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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책

어린이라는 세계(김소영 에세이)

by kongstory 2022. 6. 7.

 

 

 

원래는 내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사소하고 싱거운 이야기라도 좋으니 내 생활의 내용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무엇이 되었든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쓰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세계를 정비하려던 것이었다.

 

 

 

 

 

우리가 어렸을 때 기다려 주는 어른을 많이 만나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지금 어린이를 기다려 주면, 어린이들은 나중에 다른 어른이 될 것이다.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어린이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무서운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조심하고, 무서운 것을 마주하면서 용기를 키우고, 

무서운 것을 이겨 내면서 새로운 자신이 된다는 것을. 그런 식의 성장은 우리가 어른이 된 뒤에도 계속된다.

그러니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해 줄 일은 무서운 대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할 힘을 키워 주는 것 아닐까.

하지만 모든 무서운 일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근데 저희 키우는 거 좋긴 하겠지만 좀 힘들 것 같아요. 말도 안 듣고.

 

맞아. 저는 자식 안 낳을 수도 있어요.

결혼도 안 할 수도 있고. 사십 대는 아직 일도 하고. 힘들 것 같아요

 

 

 

 

 


 

 

 

 

 

사람들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하는데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죽음보다 삶이 더 많은 용기를 요구했다.

 

 

 

 

이런 세상을 나는 계속 미워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이런 세상을 어떻게 저주하지 않을 수 있나. 

 

 

 

 

 

중요한 건 나에게 삶과 죽음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삶을 선택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위해 인생의 속도와 방향을 조정하고, 어느 순간까지는 아이 몫의 결정과

그에 따른 책임도 감수하는 것이 양육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아이를 키우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것까지가 양육이 아닐까 하고.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겠지만 아마 그만큼 무겁지 않을까 그것 역시 짐작만 해 본다.

 

양육자가 아니어도 '남의 집 어른'은 얼마든지 될 수 있다.

엄마가 된 친구와 나는 각자의 속도와 방향으로 살아간다.

부모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나는 끝까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친구 역시 아이 없이 나이 들어가는 나의 삶을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전히 내가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 해도 상관없다. 

어른은 그런 데 신경쓰지 않는 법이다.

 

 

 

 

 

"천천히 해"

나는 이제 어린이에게 하는 말을 나에게도 해 준다.

 

 

 

 

착하다는 말 대신 '어,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 하고 답했다.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들은 그 사실을 깜빡 하는 것 같다.

 

 

 

 

 

 

 

 

 

 

어린이를 거부하는 업주에게 껄끄러운 상황을 감수할 용기가 없는 것처럼

어린이를 참지 못하는 내게는 관용이 없었다. 나는 착하고 귀엽고 예절 바른 어린이만 좋아했던 것이다.

 

이런 태도가 차별과 혐오의 소산이라는 것을 안 뒤에는 의식적으로 어린이의 소음을 무시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내가 편안해졌다. 눈살 찌푸릴 일이 없기 때문이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누린 사람이 잘 모르고 경험 없는 사람을 참고 기다려 주는 것.

 

 

 

 

 

 

 

 

 

아이가 없는 것이 왜 안된 일이지?

 

"왜 안낳아?"라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 나는 "왜 낳았어?"라고 묻지 않는데.

"안 낳으면 나중에 후회해"라는 말도 들어봤다. 나는 "낳은 거 나중에 후회할걸"이라고 하지 않는데.

차마 그런식으로 대꾸할 수는 없어서 속상한 순간들이 많았다.

아이 없는 삶을 살고 있는 여성으로서 들어 온 말과 하고 싶은 말들은 책 한권으로 써도 부족할 것이다.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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