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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책

[책리뷰] 한강 채식주의자, 기억에 남는 문장 기록

by kongstory 2022. 6. 30.

 

 

 

 

 

 

화제가 되었다는 것을 제외하곤

이 소설에 대해 그 어떤 정보도 없었던 채

그저 정말로 단순히

채식주의에 대한 소설로 생각했던 터라

너무나 충격적인 내용을 접하고 놀랐다.

 

 

영혜가 꿈에 시달리며

채식주의를 하게 된 건

어릴적부터 유난히 영혜를 향하던 손찌검,

자신도 그 손찌검을 피하기 위해

때로 영혜를 방관했을 가족들

자신을 문 강아지가 잔인하게 죽고

그 고기를 먹었던 기억

 

사랑이 없는 결혼, 남편의 태도.

그 일상들까지

모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영혜를 때리는 아빠는

무슨 자격으로 강아지를 처참하게 죽였을까

지속되는 폭력을 휘두르는 아빠보다

차라리 한번 문 개가 덜 나쁘지 않은가..?

그냥 그 일을 핑계삼아서,

고기가 먹고 싶었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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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정신을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퍽 쉽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새로운 시각에서 생각해보게 된다.

 

정상적인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어버리는 일들이

예상 외로 흔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의 후배 j가

그녀의 남편을 보며 자신은 비교적 정상적인

사람이구나 하는 걸 깨닫는 장면이나 

그녀가 영혜의 병원에 다니면서

거리를 걷다, 이렇게나 멀쩡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새삼스러워 하던 장면도 떠오른다.

 

 

 

168페이지부터는 두번이나 읽었기에

기억에 남는 문장들을 찍고 옮겨 적어보았다.

 

 


 

 

 

 

 

그렇게 끝났다.

그날 이후 그들의 삶은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살아갔다.

등 뒤에 끈질긴 추문을 매단 채 가게를 꾸려나갔다.

시간은 가혹할 만큼 공정한 물결이어서,

인내로만 단단히 뭉쳐진 그녀의 삶도 함께 떠밀고

하류로 나아갔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스스로 감당할 줄 알았으며,

성실은 천성과 같았다.

딸로서, 언니나 누나로서, 나내나 엄마로서,

가게를 꾸리는 생활인으로서,

하다못해 지하철에서 스치는 행인으로까지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그 성실의 관성으로 그녀는 시간과 함께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삼월 영혜가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다면.

비내리는 밤의 숲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면.

 

 

 

 

 

 

...... 왜, 죽으면 안되는 거야?

 

 

 

 


 

 

 

 

 

 

그 저녁,

영혜의 말대로 그들이 영영 집을 떠났다면

모든 것은 달라졌을까.

 

그날의 가족모임에서,

아버지가 영혜의 뺨을 치기 전에

그녀가 더 세게 팔을 붙잡았다면

모든 것은 달라졌을까.

 

영혜가 처음 제부를 인사시키러 데려왔을 때,

어쩐지 인상이 차가워보여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육감대로 그 결혼을 그녀가 만류했다면

모든 것은 달라졌을까.

 

 

그렇게 그녀는 영혜의 운명에 작용했을

변수들을 불러내는 일에 골몰할 때가 있었다.

 

동생의 삶에 놓인 바둑돌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헤아리는 일은

부질없었을뿐더러 가능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생각을 멈출 수는 없었다.

 

만일 그녀와 그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마침내 거기에 생각이 이를 때,

그녀의 머리는 둔중히 마비되곤 했다.

 

 

 


 

 

 

 

그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그것을 부지중에 알면서 그녀는 그와 결혼했다.

혹 그녀에게는 자신을 좀더 위로 끌어올려줄

무엇인가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처음 얼마 동안은 여느 부부들처럼

그와 크고작은 언쟁을 하기도 했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체념할 수 있는 것들은 체념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그를 위한 것이었을까.

함께 살았던 팔년 동안, 그가 그녀를 좌절시킨 만큼

그녀 역시 그를 좌절시켰던 것은 아닐까.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사실이었다.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그 순간 그녀는 뜻밖의 고통을 느꼈다.

살아야 할 시간이 다시 기한 없이 남아 있었는데,

그것이 조금도 기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그녀는 이미 깨달았다.

자신이 오래전부터 죽어 있었다는 것을.

 

 

 

 

 

 

지난 수년 동안

자신이 결코 믿을 수 없었던 그 질문을,

그녀는 처음으로 영혜에게 던진다.

 

 

 

 

 

지금 그녀가 남모르게 겪고 있는

고통과 불면을 영혜는 오래전에,

보통의 사람들보다 빠른 속력으로 통화해,

거기서 더 앞으로 나아간 걸까.

 

그러던 어느 찰나

일상으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끈을

놓아버린 걸까.

 

 

 

 

 

 

 

 

 

 

 

 

 

 

 

 

저 눈 뒤에서

무엇이 술렁거리고 있을까.

어떤 공포, 어떤 분노, 어떤 고통이,

그녀가 모르는 어떤 지옥이

도사리고 있을까.

 

영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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